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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한 교수의 상생주택정책] '민생주의 국가' 대만의 자가 보유 사회의 교훈 2022.01.26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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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23
내용
최근 주택 대란을 겪으면서, 싱가포르의 주택 정책에서 해결안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바람직한 일이다. 싱가포르 외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국가가 있다. 한때는 우리나라와 동병상린 국가였지만 지금은 멀어진 대만이다.

우리가 대만의 주택 정책에 대해서 주목하는 이유는 자유 시장 경제 국가 중에서는 드문 자가 보유율 90%를 달성했다는 점이다. 자가 보유율 90%를 달성한 국가들은 동구권 국가들과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주를 이룬다. 영국, 프랑스 등 사회적 시장 경제 체제를 가진 서유럽 국가들의 자가 보유율은 60~70% 수준이다. 자유 시장 경제 체제 국가인 미국이나 일본의 자가 보유율은 60~65% 수준이다. 대만의 자가 보유율 90% 달성은 무주택 문제를 해결했다는 측면에서 경이롭다고 말하고 싶다.

대만은 1949년 태생 당시부터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국가였다. 폭 150~200㎞ 대만 해협 건너편 거대한 대륙에 자리한 공산당 세력과의 적대적 관계에서 생존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1987년이 되어서야 계엄령이 해제됐다. 대만의 집권 세력인 국민당 정부는 1980년대 초까지 모든 분야를 총괄하고 통제했다. 이 글도 정치 얘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

대만의 국시는 1900년대 초에 쑨원이 주창한 민권주의, 민족주의, 민생주의의 삼민주의이다. 쑨원은 민생주의의 개념을 자본 절제와 토지 해방으로 설정하고 독점 자본의 억제와 대기업의 국영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주창했다. 국민당 정부는 1949년 토지개혁을 실시했고, 국가 정책의 기조를 국민들의 생활 안정을 목표로 안정과 복지를 중시해왔다. 대만의 1인당 GDP는, 한국이 1970년대 오일쇼크나 1997년 외환위기 때에 큰 폭으로 하락했던 것에 반하여, 1960년부터 2000년대까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1인당 GDP는 1960년부터 1975년까지 한국보다 1.5~2배 높았으며, 2003년이 되어서야 한국이 대만을 추월하게 된다. 2019년 구매력 평가지수(PPP)로 보면, 대만인은 4만9827달러로 한국인(3만9387달러)보다 높다. 대만인이 한국인보다 안정적으로 그리고 더 윤택하게 살아왔으며 현재도 살고 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대만의 민생주의 정책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초대 총통인 장제스는 1950년부터 1975년 사망할 때까지 집권했다. 이 기간에 장제스는 모든 국가 역량을 ‘본토 회복’에 집중했다. 2차 세계대전의 피해 복구와 수입 대체 산업의 육성 그리고 수출 지향적 경제 성장을 추진했다. 주택 분야는 미 원조 자금을 이용하여 불법건축물을 철거하고 ‘대체 주택’을 건설하는 정도였다.

1973년 86세 고령이 된 장제스 총통은 아들 장징귀를 행정원장에 임명하고 장 총통 사망 후 1978년 장징귀가 총통에 취임한다. 새 총통의 취임과 함께 대만의 국가 정책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장징귀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대만 번영의 기초를 닦았으며, 경제 건설의 설계자가 된다. 1975년에 경제건설 6개년 계획과 함께 ‘국민주택건설 6개년계획’이 추진된다. 1981년까지 신도시 건설과 10만8000호의 국민주택 공급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택지 확보 고비용과 신규 택지의 접근성 부족 그리고 주택 수요 부족으로 실제 공급량은 7만2000호에 그쳤다. 또한 불법 전대 등 관리상의 문제가 발생했다. 공공 주도 주택 공급 방식에 있어서 공급량과 관리 문제 등 여러 가지 한계에 직면했다.

대만의 1980년대는 ‘자유화’ 시대다. 대만 정부는 1984년부터 ‘경제 자유화, 국제화, 제도화’를 새로운 경제 정책의 기조로 설정했다. 1986년 첫 야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창당됐으며,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됐다. 1988년에 외성인인 장징귀 총통이 죽고, 리덩후이가 본성인 출신 첫 총통에 취임했다. 주택 정책에서도 국가에 의한 국민주택 건설 정책을 유지하면서, 민간 건설 중심으로 대전환했다. 민간 건설업을 경기 선도형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세제나 토지 제공 등에서 우대했다. 1982년~1989년에 건설된 총 83만6867호에서 민간 주택의 비율은 96.5%로 8년 동안 매년 평균 10만호 공급했다. 1990년이 되면 자가 점유율이 80%에 이르고, 빈집이 전국적으로 13.3%가 되며, 타이베이의 경우는 9.4%가 된다.
이러한 민간 주택 공급량 추세는 1999년까지 지속되었다. 1982년부터 1999년까지 총 주택 공급량은 212만6006호이며, 민간 부문 총 공급량은 202만6159호로 95.3%를 차지했다. 1990년부터 민간 주택 시장의 수요를 진작하기 위하여 다양한 계층을 위한 여러 가지 모기지 상품 개발과 세제 혜택을 부여했다. 은행 대출액이 많아지면 정부가 나서서 추가 신용을 제공하고, 주택 상속세 혜택과 귀속 임대료에 대한 세금 면제 그리고 모기지 이자를 공제해주기도 했다.

자가 보유율은 2000년에 85%이며, 계속 상승하여 2018년에는 89.2%에 이른다.

대만은 여러 가지로 한국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건국과 함께 반공을 국시로 채택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체제 안정을 구축하고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채택하여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총 인구수는 2359만6000명(2019)이며, 총 가구수는 803만3700호(2020), 가구당 가족수는 2.8명이다. 생산가능 인구율 등 연령대 별 인구 구조도 남한과 유사하다. 총 국토면적은 3만6197㎢로 남한의 36% 수준이며, 인구밀도는 세계 2위국가로 651.9인/㎢이며, 남한(530.7인/㎢)보다 높다. 도시화율은 79.1%로 한국(81.4%) 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대만의 총 주택수는 899만2000호이며, 자가 보유율은 90%, 자가 점유율은 78.6%, 빈집 비율은 18.5%, 임대 주택 비율은 10.9%이다. 주택가격은 2001년부터 2020년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하였으며, 타이베이의 경우 2001년 대비 216% 상승하여 3배 가격이 되었다. 타이베이 3베드룸 아파트 가격은 1995년에 600만~700만 대만 달러(약 2억5000만 원)이었으나, 2020년에는 2000만 대만 달러(약 8억 원) 수준으로 상승했다. 대만 내무부(MOI) 자료에 따르면, 타이베이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인 PIR은 2000년대 초부터 상승하여 2004년에는 6.4, 2010년에는 14를 초과하고 2020년에는 15.8로 상승했다. 이 수치는 런던(8.6), 뉴욕(5.9), 토론토(9.9)보다 높고 홍콩(20.7)보다는 아직 낮은 수준이다. 2020년 전국적으로 대만의 PIR은 9.2이다. 최근 대만 주택의 문제는 주택가격이 소득으로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는 점이다.

신규 주택에 대한 대출 이자율은 2000년부터 계속 하락하여 2005년~2009년 2~3%를 유지하다가 그 이후에는 2%이하의 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2021년 주택담보대출 이율은 1.357%이다. 소득 대비 모기지 상환 비율은 2004년~2005년에는 25% 수준으로 적정했다. 그러나 그 이후 계속 증가하여 2010년에는 50%가 되고, 2015년에는 70%에 근접하여 피크가 되고 그 이후에는 60%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2016년 이후 주담대 이자율이 1%대의 저금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소득에서 주택담보대출 상환 비율이 60%내외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소득의 반 이상을 주택담보대출 상환에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 대만의 주택문제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빈집 문제이다. 2020년 전국적으로 빈집 비율은 18.5%로, 대략적으로 다섯 집당 한 집은 빈집이다. 대만은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미약하다. <글로벌 프로퍼티>에 따르면, 2019년 주택 보유세의 실효 세율이 0.1~0.2%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다주택자 보유세가 누진되지도 않으며, 한국과 같은 종합부동산세도 없다. 주택 임대 수익률도 1.5%/년이니, 다주택을 굳이 임대하려 하지 않게 된다. 대만 다주택자들은 임대 수익보다는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익을 중시하고 있다. 대만은 한국과 비교할 때에 정비 사업이 활발하지 않다. 오래된 집을 빈집 상태로 그대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 주택 정책에서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삼민주의 국가 대만에서 ‘민생’은 국가 존립의 3대 지지대의 하나로 중시했다. 대만의 헌정 분립 체제는 서구식 3권 분립 체제인 행정원, 입법원, 사법원에 고시원, 감찰원을 추가하여 5원제이다. 민생을 보호하고 부패를 근절하기 위하여 감찰원을 독립기구로 두었다. 부동산 거래와 개발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각종 부패들과 주택 시장 교란 행위를 추방할 수 있는 헌정 체제를 갖춘 것이다.

둘째, 자가 보유율 90% 자가 보유 사회를 달성하여 무주택 문제를 해결한 점이다. 1980년대 이후 정부의 관여를 최소화하고 민간 주도의 자유 시장 기반으로 주택을 대량 공급했다. 또한, 다양한 주택담보대출 금융 상품을 개발하고 세제 혜택을 부여했다. 대만은 주택 문제에 있어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형평성을 달성했다. 대만의 자본 소득 지니계수는 구미 제국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그 만큼 자산의 불평등이 적다는 것이다. 대만의 자산 불평등 해소는 자가 보유율 90%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2000년 이후 대만의 주택 문제는 지속적인 가격 앙등으로 인해 부담 불가능한 주택이 되었다는 점이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 원인은 다주택자이다. 주택 보급률이 110%이상이기 때문에 주택 공급량은 충분하다. 문제는 다주택자들이 소유 주택을 매도하지 않는 매물 잠김 현상 때문이다. 대만의 주택가격을 하향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다주택자의 보유세 누진 중과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2030년경이 되면 주택 보급률 110% 이상이 될 것이다. 주택 가격의 정상화 즉 부담가능한 주택 가격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주택자의 매물 잠김 현상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3‧9대선을 앞두고, 양당 후보들은 막장식 표몰이 주택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250만호 주택 공급, 각종 주택 관련 세제 해제, 주택담보대출 완화 등 이런 공약이 과연 민생 공약일까? 이미 부담 불가능한 주택이 되었다. ‘청년들이여, 영끌’하란 말인가? 부담가능한 주택이나 자가 보유율에 대한 공약은 한마디도 없다. 진정한 민생 주택 공약이 매우 아쉽다.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교수(전 주택도시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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