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20여 년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추진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 소멸”은 진행 중이다. 이 국책 사업이 지방 소멸의 진행 속도를 늦추었을까? 아니면, 별 효과가 없었던 것일까?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그리고 글로벌 다중 전쟁 시대에, 20년 전 버전인 공공기관 지방이전으로 과연, 지방을 재생시킬 수 있을까? 공공기관의 지방이전과 관련해 다시 생각해 보자.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발전하기 위해서 미래 국토 발전 모델은 무엇이어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도 수도권의 인적·물적 자원 집중도는 커질 것이다. 이 추세는 그 속도를 약간 늦출 순 있어도 막을 수는 없는 사회경제적 현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라는 국내 차원에서 수도권 집중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지방은 수도권 발전의 피해자로 인식하여, 수도권에서 빼서 지방에 주는 뺄셈 사고방식이 상존해 왔다.
수도권도 발전하고, 지방도 발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번 시각을 달리해 보면 어떨까? “수도권은 수도권이고, 지방은 지방”이라고. 먼저, 수도권은 지방과 관련한 국내 차원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차원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도시 경쟁력은 곧 국가 경쟁력이다. 대한민국이 중국·일본 등과 비교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수도권은 어떤 자원과 능력을 가져야 할까?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추진하면서 수도권의 국제 경쟁력을 훼손하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 예로, 이전 대상으로 한국은행 등 핵심적인 금융기관이 거론되고 있다. 글로벌 도시의 핵은 금융인데, 이들 기관이 빠진 상태에서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가? 금융은 모든 산업과 비즈니스의 심장으로 그 역할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지방 분산으로 자칫 산업 전반에 걸쳐서 발전 동력이 훼손되지 않을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과연, 이렇게 되어버린 서울이 세계적 금융 허브인 도쿄, 싱가포르, 상하이, 베이징, 홍콩 등과 경쟁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동아시아 경쟁 도시에 비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선 수도권에 각종 규제를 전면적으로 완화해야 하며, 더 나아가 담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할 판이다. 수도권은 우리 기업들이 무역 전쟁에서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전진기지가 되고, 외국의 유수 기업들에는 지속가능한 둥지가 되어야 한다. 사실, 수도권은 옥토(沃土)다. 산은 아름답고, 물이 맑고, 하늘도 푸르다. 사람들도 매력 있다. 글로벌 도시로서의 발전 잠재력이 충분하다.
지방 발전 모델을 새롭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00년 이후 권역별 인구 추이를 보면, 수도권과 충청권·제주권은 증가하고 있으나, 나머지 권역은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있다. 앞으로 지방의 인구 감소 속도는 더 빨라지면서, 지방 쇠퇴는 가속화될 것이다. 부산·울산·경남을 중심으로 초광역권 추진 움직임이 있다. 그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추진은 쉽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바탕으로 한 발전 모델을 지양하고, 거꾸로 미래 시점에서 발전 구상을 하는 용기와 지혜가 요구된다. 인구도 과거에 비해 반으로 감소할 것이다. 젊은이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서울로 가는데, 이를 막을 수 없다. 인구 구조 변화와 인구 감소 실태를 정밀하게 데이터로 파악하고 이를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 경제, 사회, 환경 등 지속가능발전 모델을 창조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지방은 지속가능발전 리셋이 필요하다. 농촌의 분산 거주지들을 콤팩트 빌리지로 통합하고, 일부 중소도시를 시범적으로 콤팩트 타운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려시대 동경·남경·서경을 경영한 것과 같이, 소수 거점 대도시를 제2 수도로 집중 육성하는 것을 검토해볼 시점이다. 담대하게.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지속가능과학회 회장)